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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바이러스 번지는 한국사회
2008-09-09 7331

[중앙일보 김창규.이충형]  김모(54)씨는 지난달까지 서울에서 부인과 조그만 식당을 운영했지만 현상 유지하기에도 급급했다. 4년 전 당뇨병에 걸렸으나 약값을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서도 술을 마셨다. 올해 들어 집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주인의 요구를 받았다. 결국 김씨는 지난달 중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계기사 C10면>

'자살 바이러스'가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8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사람은 1만3407명으로 하루에 36.7명이 목숨을 끊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1.5명(200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고 평균(11.2명)의 두 배에 이른다. 이덕형 보건복지가족부 질병정책관은 “자살의 심각성에 비해 자살 예방 인프라는 취약하다”며 “자살 예방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예산도 연간 5억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손실 큰데 원인 조사 없어=국립서울병원은 한 해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액을 3조856억원으로 추산했다. 살아서 생산에 참여한다고 가정할 때 수입 상실 등 간접비용이 3조702억원이다. 응급실진료비·장례비·수사비 등 직접비용이 95억4000만원이다. 이 밖에 가족의 의료비·교통비 등 외부비용이 47억6000만원, 가족의 기회 노동력 손실과 같은 비용이 10억원 등이다.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지만 자살 원인을 다년간 역학 조사한 사례는 거의 없다. 외환위기 후의 가족 붕괴, 유명인이 자살하면 모방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최근 자살이 늘어난 원인으로 꼽힌다.

고려대 안암병원 유정화 간호사가 1994~2005년 자살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유명 인사가 사망한 뒤 한 달 평균 137명이 더 자살했다.

◆3건 중 1건 동반자살=주부 A씨(37)는 7일 대구의 자택에서 두 아들(5, 7세)과 함께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A씨는 남편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 때문에 가정 불화가 심해졌다.

일가족이 동반 자살하는 사례는 외국에선 드물다. 부모 인생과 자식 인생이 별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살 세 건 가운데 한 건이 동반 자살이다. 김정진 나사렛대(사회복지학) 교수는 “한국에서는 부모와 자식을 하나로 보는 가족 중심적 사고가 강하다. 부모 입장에서는 본인 이외에는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고통받는 가족=회사원 B씨(51)는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 1년 전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생긴 증상이다. B씨는 “잘살아 보려고 노력하지만 죄책감 때문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자식과도 상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변의 여섯 명이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에 시달린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1년에 8만여 명씩 새로 자살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광역정신보건센터의 전준희 위기관리팀장은 “자살은 본인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라며 “자살자의 가족은 '내 탓'이라는 죄책감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은 “자살 위험에 노출된 사람이 처한 환경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정부는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신의료기관·경찰서 등이 연계된 자살 위기 대응팀을 만들고 자살 예방용 긴급 전화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자살 예방법률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규·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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